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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12월] 혁신의 순간

혁신의 순간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다

2022. 12. 27

엑스(X)선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해부하지 않고도 사람의 뼈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사생활 침해는 물론 어두운 미래를 불러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 하지만 엑스선은 근대 과학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고 의료 기술의 혁명을 이끌며 여전히 그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다. 더욱 놀라운 건 인류 문명의 진보를 견인한 엑스선이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글 편집실 참고 도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 150>(미셸 리발 지음, 예담 펴냄), <역사를 수놓은 발명 250가지>(토머스 J. 크로웰 지음 현암사 펴냄)


엑스선의 우연한 발견

엑스선은 독일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Wilhelm Conrad Rontgen)이 음극선을 연구하다 우연히 발견했다. 1895년 어느날, 뢴트겐은 여느 때처럼 실험실에서 음극선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19세기 말 당시 대학 실험실에서는 크룩스관(Crookes Tube)이라는 진공관을 이용한 실험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크룩스관 내부를 불활성 기체로 채운 뒤 양쪽에 설치된 양극과 음극 사이에 높은 전압을 걸어주면, 음극에서 방출되어 양극으로 향하는 전자의 흐름이 관측된다. 이 전자의 흐름을 음극선이라고 하는데, 1897년 영국 물리학자 조셉 톰슨(J. J. Thomson)에 의해 전자라고 밝혀지기 전까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현상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물리학자의 연구 대상이었다. 

1895년 11월 8일 금요일 늦은 오후 뢴트겐은 크룩스관을 이용해 진공관 안의 음극선을 연구하고 있었다. 실험실을 어두운 암실로 만들었고, 크룩스관 역시 빛이 통과할 수 없도록 검은색 마분지로 감싼 뒤 실험을 진행했다. 뢴트겐이 전류를 흘려보내자 검은 종이로 둘러싼 크룩스관의 음극선은 발광하지 않았지만, 엉뚱한 물체가 빛을 내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놓아두었던 형광물질을 바른 스크린이었다. 이 형광물질은 백금시안화바륨으로 음극선이 닿으면 발광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스크린과 크룩스관 사이에 다른 물건을 놓아도 그 빛은 여전히 물건을 통과해 스크린에 비쳤다. 순간 뢴트겐은 이 빛이 일반 빛과는 다르다는 걸 직감했다. 크룩스관 밖으로 나오지 못한 음극선이 스크린을 발광시켰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즉 스크린 발광 현상의 원인은 음극선이 아니라 음극선에서 나온 새로운 무언가로 추측했고, 이를 엑스선이라 이름 붙인 뒤 실험을 이어 나갔다. 그가 크룩스관 옆에 백금시안화바륨으로 A라는 글자를 쓴 뒤 두꺼운 판자를 놓자 놀랍게도 스크린에 A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납 상자를 이용했을 때 그는 더욱 놀랐는데, 납을 통과한 엑스선이 손의 뼈를 투과하지 못해 스크린에 그림자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세상을 놀라게 한 엑스선의 등장

뢴트겐은 한동안 스크린 앞에 서서 환각을 본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아내를 데려와 똑같이 손에 엑스선을 투과해 촬영했는데, 그녀의 손뼈는 물론 결혼반지까지 고스란히 보였다. 아내는 이를 보고 “나의 죽음을 보았다”라고 할 정도로 놀랐다고 한다. 엑스선의 물체 통과율은 그 물질을 구성하는 요소의 질량에 반비례한다. 따라서 사진에 손의 뼈마디만 보인 것은 엑스선이 살 조직은 통과하지만 칼슘이 주성분인 뼈는 통과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뢴트겐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정리한 논문 ‘새로운 종류의 광선에 대하여’를 1895년 12월, 뷔르츠부르크 물리학회에 제출했다. 실험 당시 어떤 빛인지 알 수 없는 의미로 붙인 엑스선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사용되었다.  

뢴트겐의 엑스선에 관한 논문과 아내의 손뼈 사진이 공개되자 세상은 큰 충격에 빠졌다. 이후 수많은 과학자가 엑스선에 큰 관심을 보였고, 논문 발표 1년 만에 엑스선에 관한 논문이 1,000편, 단행본이 50권가량 출판됐다. 50세가 넘도록 학술 논문 48편을 발표했으나 크게 주목받지 못한 뢴트겐은 엑스선의 발견으로 세계적인 과학자 반열에 올랐고, 1897년에 뢴트겐협회 결성에 이어 1901년에는 제1회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인류에게 안겨준 가장 큰 선물

사실 엑스선은 뢴트겐보다 앞서 여러 과학자에 의해 발견될 기회가 많았다. 영국 화학자이자 물리학자 윌리엄 크룩스(William Crookes)는 음극선 주변에서 사진 건판이 흐려진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불평만 늘어놓았고, 독일 과학자 필리프 레나르트(Philipp Lenard) 역시 음극선 부근에서 발광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뢴트겐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자, 레나르트는 “뢴트겐은 엑스선 탄생의 산파에 불과하며 산모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나였다”라고 발끈했는데, 뢴트겐이 엑스선을 발견하게 된 것은 레나르트가 발견한 음극선의 실험 결과를 재현하는 과정에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룩스와 레나르트가 이상 현상에 대해 실험 장치의 문제로만 치부한 것과 달리 뢴트겐은 원인을 밝히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고, 그 결과 엑스선의 발견이라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엑스선의 발견은 과학계는 물론 의학계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엑스선을 통해 손가락에 꽂힌 유리 파편을 찾기도 하고, 환자의 머리에 박힌 탄환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엑스선의 발견으로 몸을 절개하지 않고도 신체 내부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총상을 입거나 뼈가 부러진 군인을 치료하는 데도 엑스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후 엑스선은 심장병, 결석 진단, 치과 진료 등 다양한 질병 료에 다채롭게 이용됐고 암이나 피부병을 치료하는 데도 활용되며 사용 범위가 점차 늘어났다.  

엑스선으로 인해 현대 물리학의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될 만큼 엑스선의 발견은 인류 역사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방사능과 전자, 방사성 원소를 발견하고 DNA가 이중나선 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도 엑스선 때문에 밝힐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엑스선의 발견으로 과학계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뢴트겐은 극심한 생활고로 힘든 말년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모아둔 재산이 많지 않은 데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 독일에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그는 큰돈을 벌 수 있었던 엑스선의 특허 등록도 하지 않았는데 “원래 자연에 있던 것을 발견했을 뿐 전 인류가 엑스선을 공유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 때문이었다. 오늘날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쓰이는 엑스선.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살 수 있게 된 건 뢴트겐이 인류에게 베푼 이 커다란 선물 덕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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