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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12월] 오일데스크

정유업계, 투자 플랜서 '정유' 지운다

2022. 12. 27

전 세계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지구. 덜 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버리고 처리하느냐를 고민할 때다. 이에 발맞춰 국내 다수 기업이 플라스틱 재활용 및 친환경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글 김형준(한국일보 기자)

정유업계에 따르면 고유가에 힘입어 사상 최고 실적을 거둔 정유사들이 ‘탈(脫)정유’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상반기에 거둔 역대급 영업이익을 즐기기엔 정유업계가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아서라는 분석이 많다. 세계적인 탄소중립 흐름을 고려하면 정유산업은 추세적인 쇠락의 길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유사업으로 든든하게 확보한 재원의 대부분을 탈정유 사업에 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국내 ‘빅4’ 정유업체들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12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오일뱅크는 2조 748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SK이노베이션(3조 9,783억 원), 에쓰오일(3조 540억 원), GS칼텍스(3조 2,133억 원) 등 반기별 사상 최대치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에너지 공급 대란이 일며 유가가 급등한 결과다. 

이런 가운데 정유사들이 앞다퉈 탈정유 사업 투자 계획을 내놓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블루수소 및 블루암모니아 국내 도입을 위한 연구개발에 투자할 예정이다. 현대오일뱅크 지주사인 HD현대는 “화이트 바이오 등 친환경 신사업 강화 및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오일뱅크는 최근 가동을 시작한 HPC공장을 기반으로 친환경 화학 소재 사업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2022년 상반기에 상업 가동에 돌입한 HPC공장은 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의 합작사인 현대케미칼이 3조 원 이상을 투자한 초대형 석유화학 설비다. 대산공장 내 66만 ㎡ 부지에 건설된 이 공장은 연간 에틸렌 85만 t, 프로필렌 50만 t을 생산할 수 있다.

HPC에서는 기존 석유화학 공정의 주원료인 납사보다 저렴한 탈황중질유, 부생가스, LPG 등 정유공정 부산물을 시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투입할 수 있다는 게 현대오일뱅크 설명이다. 탈황중질유를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 석유화학 공정은 국내에서 HPC가 유일하다. 그뿐 아니라 최근 수요가 급증하는 태양광 패널 소재 EVA 생산 능력은 30만 t으로 단일 라인 기준 국내 최대 규모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향후 기초 소재, 에너지 소재, 2차전지 소재, 바이오 소재 등 친환경 화학 소재를 중심으로 석유화학 다운스트림 사업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며, “HPC공장을 활용해 플라스틱 순환경제 구축에도 나설 예정으로, 현대케미칼은 롯데케미칼, LG생활건강과 함께 친환경 플라스틱 사업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전했다. 차세대 친환경 에너지 개발을 위한 노력도 지속 중이다. 현대오일뱅크는 덴마크의 할도톱소(Haldor Topsoe)와 친환경 연료인 이퓨얼(E-Fuel)에 대한 연구개발 협력을 진행 중이다. 두 회사는 수소와 이산화탄소 활용 분야에서 앞선 경쟁력을 바탕으로 이퓨얼 기술을 공동 개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현대오일뱅크는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에 필수적인 고순도 수소 연료도 생산하고 있다. 일반 수소를 수소차 연료로 쓰려면 순도를 99.999%까지 높여야 하는데, 현대오일뱅크는 기존 공정 가동에 활용해온 수소 일부를 국내 정유사 중 처음으로 차량용 고순도 수소로 전환한다. 이는 하루 최대 3,000kg으로 현대차 넥쏘 600대를 충전할 수 있는 양이다.

다른 회사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에쓰오일은 2단계 석유화학 사업인 ‘샤힌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에쓰오일은 지난 11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방한에 맞춰 이사회를 열고 투자 규모를 확정하면서, 종합 석유화학 기업으로 발돋움을 선언했다. 이사회를 통해 결정된 샤힌 프로젝트 투자 규모는 총 9조 2,580억 원에 이른다.

에쓰오일은 이를 통해 세계 최대 규모의 정유·석유화학 ‘스팀 크래커’(기초유분 생산설비)를 구축, 석유화학 비중을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키운다는 게 에쓰오일이 그린 청사진이다. 이들은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 내에 스팀 크래커를 비롯한 대단위 석유화학 생산 설비를 건설할 예정이다. 스팀 크래커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생산되는 나프타와 부생가스 등 다양한 원료를 투입해 에틸렌, 프로필렌 등 석유화학 공정의 기초유분을 생산하는 설비를 뜻한다. 내년에 착공, 2026년 완공이 목표다.

공장이 완성되면 에쓰오일은 최대 주주인 아람코의 TC2C(Thermal Crude to Chemicals) 기술을 적용,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TC2C는 기존 정유공장 내 저부가가치 중유 제품을 분해해 스팀 크래커 원료로 전환하는 공정으로, 고부가가치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 경쟁력을 키우는 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018년부터 투자를 지속해온 배터리와 소재 부문에 추가 투자를 진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2025년부터 상업 가동할 계획인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과 함께 수소, 소형모듈원전(SMR) 사업에 재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GS칼텍스 역시 친환경 소재 핵심 성분인 생분해성 플라스틱 원료 ‘3HP(Hydroxypropionic Acid)’ 시제품 생산을 위한 실증플랜트 구축, 전기차 충전과 정비가 가능한 복합형 주유소 개편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한국일보 김형준 기자는 국내외 산업계 전반에 걸쳐 다양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특히 정유 및 에너지 업계의 현황과 흐름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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