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로 바라본 2023 트렌드
트렌드는 무조건 따라야 하는 당위도, 혹은 나와 무관한 먼 미래의 일도 아니다.
트렌드 분석의 재료는 언제나 우리의 일상이다.
우리의 일상이 차곡차곡 쌓인 소셜 미디어 담론의 내용과 변화가 트렌드를 형성하고 이끈다.
한 해를 갈무리하고 2023년을 준비하는 시간, 내년에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변화할까?
본고에서는 일상을 일과 여가, 소비의 3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보고 각각의 영역에서 의미 있게 떠오른 키워드를 소개한다.
이 키워드를 통해 2023년에 펼쳐질 우리 삶의 변화를 머릿속에 그려보자. 다가올 2023년이 조금은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글 신수정(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
일터의 새로운 윤리, ‘1인분’
일터에서 가장 큰 변화는 ‘1인분’이라는 가치관이 보편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1인분’은 한 명분의 음식량이 아니라 한 사람의 몫을 뜻하는 것이다. 팀플레이가 필요한 게임에서 최소한 수행해야 할 각자의 몫으로 ‘1인분’을 이야기하던 것에서 유래했다. ‘누구나 1인분의 몫을 해내야 한다’는 게임의 사고방식은 어릴 적부터 게임을 즐긴 젊은 세대의 사회 진출로 직장에서도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게임에서처럼 직장 생활에서도 팀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각자 맡은 바 역할, 즉 1인분을 하지 못하면 안 된다. 조별 과제에서 무임승차가 용납되지 않는 것처럼 직장 생활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묻어감을 허용하지 않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인분만큼만 하자’는 마인드 셋은 이제 사회 초년생의 디폴트값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아무리 팀 퍼포먼스가 좋아도 팀의 성과와 개인의 성과를 구분해서 생각한다. 팀의 성과가 좋아도 자신이 기여한 부분이 없다면 팀의 성과는 자신의 커리어가 될 수 없고, 만약 팀의 성과가 좋지 않아도 스스로 1인분의 몫을 해낸다면 목표를 위해 투자한 자신의 노력은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인분은 철저한 개인주의가 아니라 독립적인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다하려는 이 시대 개인의 목표이자 성취감을 얻기 위한 기준이며, 공정함에 대한 감각을 대변한다. 1인분의 가치관을 탑재한 주체는 조직에 기대거나 묻어가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자신이 속한 조직에 기여하려는, 독립적인 자아 정체성을 가진 존재다.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그 자체로 온전한 스스로가 되려는 ‘1인분’의 가치관을 우리 조직에도 탑재할 때다.
자연과 반려에서 얻는 힐링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고립과 온전히 개인의 몫이 된 시간 관리는 팬데믹 시대 개인의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끼쳤다. 외부 자극에 의해 흔들리는 정신과 마음을 뜻하는 ‘멘탈’에 대한 관심은 코로나 이후 급증했는데, 여러 우려 속에서도 다행스러운 점은 정신 건강의 문제를 겪는 만큼이나 이를 해결하려는 다양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 이후 가장 늘어난 여가 활동은 자연에서의 휴식이다. 소수의 취미를 넘어 하나의 문화가 된 캠핑은 인위적인 자연이 아니라 진짜 자연에서 주중 업무나 도시의 번뇌를 잊게 하고, 캠핑의 꽃이라고 불리는 ‘불멍’ 시간은 장작불이 타오르는 고요 속에서 진정한 힐링을 선사한다. 젊은 층의 유입이 부쩍 많아진 등산과 산책은 자연을 벗 삼아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전 연령대의 여가 활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반려시장 또한 우울을 떨치고 개인이 효능감을 느끼게끔 함으로써 날로 성장하는 시장이다. 반려동물에 이어 반려식물, 반려가전까지, 무언가를 키우고 가꾸는 데 애정과 사랑을 쏟으며 치유됨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졌다. 고양이 키우는 사람을 ‘집사’라고 하듯이, 식물을 열심히 기르는 사람은 스스로를 ‘식집사’라고 하며 식물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표현한다. 반려의 영역은 넓어지는 동시에 깊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문화센터나 원데이 클래스 베이킹 수업에 강아지 수제 간식 베이킹반도 생겼다. 그뿐만 아니라 반려동물 동반 여행 플랫폼도 생겨나면서 반려동물과 즐기는 여가 생활이 더욱 편리해졌다. 반려동물과 즐기는 펫캉스, 펫 메뉴판을 갖춘 애견 동반 카페 등 펫과 함께하는 여가 생활은 일상적인 풍경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우리 모두 금쪽이가 된 지금, 이 시대 개인에게 정서적 위안과 효능감,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자연과 반려산업에 주목하자.
취향을 공부하고 소비를 성찰하는 ‘소비기록’
제품 협찬 글이 많아서 한동안 거르던 블로그가 순도 높은 일상을 기록하는 곳으로 다시 떠올랐다. 코로나로 더욱 소중해진 일상을 기록하려는 사람이 늘어났고, 블로그 챌린지는 이런 일상기록 행위를 더욱 독려했다. 블로그에 남겨진 일상은 다양한 주제로 기록되었다. 일상기록부터 운동기록, 식단기록, 독서기록까지 어찌 보면 시시콜콜한 일상이 소중한 나의 아카이브로 승화된 것이다. 특히 늘어난 기록의 주제 중 눈여겨볼 것은 ‘소비기록’이다. ‘소비기록’은 금전 출납을 관리하기 위해 쓰는 가계부와 다르다. 소비를 앞두고 고민하는 점은 무엇인지, 소비했을 때 느낌은 어떤지, 소비를 마치고 나서 얻는 만족감과 활용도까지, 소비 경험의 긴 여정이 소상히 기록된다. 이렇게 쌓인 소비기록은 내 취향의 역사라고 해도 무방하다. 소비를 통해 내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어떤 포인트에서 만족감을 얻는지 자신의 취향을 알아가고, 소비기록으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더욱 심도 있게 발전시킨다. 이처럼 소셜 미디어 시대에 소비는 쓰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남는 경험 자산으로 격상되었다. 예를 들어 한 유튜버가 사람들이 궁금해하던 5성급 호텔 코너룸에서 호캉스를 즐기고, 그 경험을 영상으로 만들어 올려 얼마간의 경제적 이득과 다수의 팔로워를 얻었다면 이 행위는 소비활동일까 경제활동일까 사회적 관계 맺기 활동일까. 당장의 손익보다 나중에도 남는 경험, 그리고 경험 콘텐츠를 매개로 한 새로운 관계 형성이 더 중요하다. 이제 재화를 써서 없애는 사람이라는 뜻의 ‘소비자’라는 말은 지금의 소비자를 설명하는데 충분치 않다. 소비자는 더 이상 습관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소비 행위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과 주변과 환경을 위해 끊임없이 더 나은 대안을 찾고,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을 대변하는 브랜드가 있다면 언제든 노선을 갈아타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소비 ‘주체’들이다.
신수정 수석은 빅데이터 분석 기업 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에서 데이터를 통해 우리네 삶의 양식에서 기분 좋은 변화를 발견·공유하고 있다. 생활변화관측소에서 발행하는 <트렌드 노트> 시리즈의 공저자로도 활동 중이다.